인공지능(AI) 개발 속도를 늦춰야 한다는 '속도조절론'을 둘러싸고 미국 AI 업계의 노선 갈등이 격화하고 있다. 다리오 아모데이 앤트로픽 최고경영자(CEO) 등을 중심으로 "AI의 통제 불가능한 위험을 줄이기 위해 개발 속도를 조절해야 한다"는 주장이 확산하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젠슨 황 엔비디아 CEO가 "사기(hoax)"라며 공개 반박에 나섰다.
"AI 공포가 만든 잘못된 양자택일"
14일(현지시각) 외신 등에 따르면, 황 CEO는 이날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서 열린 '올인 서밋' 패널 토론 도중 트럼프 대통령의 전화를 받았다. 황 CEO는 통화를 스피커폰으로 연결해 행사장 청중이 대화 내용을 들을 수 있도록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통화에서 최근 확산하는 AI 속도조절론을 두고 "사기"라고 강조했다. 그는 "AI 발전을 원하지 않는 사람들의 의도에 맞는 행동"이라며 "정치적인 인사들일 수도 있고 중국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미국이 AI의 위험성을 이유로 개발 속도를 늦추면 중국 등 경쟁국만 반사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게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이다. 그는 "조금은 조심해야 하고 신중하게 진행해야 한다"면서도 "그렇다고 산업 자체를 멈춰 세워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황 CEO도 즉각 동조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에 "그런 일이 일어나도록 두지 않을 것"이라고 답했고 행사장에서는 박수가 나왔다.
황 CEO는 AI 위험론에도 선을 그었다. 그는 "미래에 대한 예측이 명백한 과학적 근거에 기반하지 않는다면 받아들이기 어렵다"며 "일시 중단이나 속도 조절은 기업이 통제 불능 상태라고 판단할 경우 스스로 취할 수 있는 조치"라고 부연했다. 정부가 일률적으로 개발 속도를 제한하기보다 각 AI 기업이 필요에 따라 자율적으로 속도를 조절해야 한다는 취지다.
다만 황 CEO는 AI 위험성을 우려해 최근 앤트로픽을 떠난 제이콥 콕슨 연구원의 문제 제기 자체는 높이 평가했다. 그는 "콕슨이 용기 있게 자신의 우려를 표명했다"며 기업이 내부 경고의 목소리를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내부 문제 제기와 산업 전체의 개발 속도를 늦추는 것은 별개의 문제라고 선을 그었다. AI에 대한 공포가 '빠른 혁신'과 '안전성' 중 하나를 택해야 하는 식의 잘못된 양자택일을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AI 가속론' 외친 젠슨 황 손엔 삼성 폴드8
AI 개발 속도를 둘러싼 논쟁은 데이터센터 투자로도 번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신규 데이터센터 건설에 소극적인 일부 주(州)를 비판하며 "데이터센터는 앞으로 20~25년간 석유와 같은 존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AI와 데이터센터가 인터넷보다 더 큰 경제적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는 만큼 관련 인프라 확충에 제동을 걸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트루스소셜에서도 "AI와 데이터센터를 겨냥한 음모가 진행 중이며 이를 기뻐할 유일한 나라는 중국"이라며 "AI에서 이기는 자가 승리한다"고 말했다. 이어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죽이지 말라"며 AI가 인류를 위협할 것이라는 주장도 "사기"라고 재차 일축했다.
반면 AI 업계에서는 속도조절 필요성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아모데이 CEO는 지난 12일 장문의 글을 통해 최첨단 AI의 성능이 지나치게 빠르게 향상되고 있다며 예상하기 어려운 위험에 대비하려면 개발 속도를 늦출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샘 올트먼 오픈AI CEO와 일론 머스크 xAI CEO, 데미스 허사비스 구글 딥마인드 CEO 등도 AI 안전 문제에 공감하는 입장을 보였다.
일각에서는 선두 업체들의 속도조절론을 두고 후발 주자의 추격을 막기 위한 '사다리 걷어차기'라는 시각도 있다. 이미 대규모 AI 모델과 컴퓨팅 인프라를 확보한 기업일수록 개발 속도 제한에 따른 부담이 상대적으로 작기 때문이다.
엔비디아의 이해관계는 이들과 다소 다르다. 엔비디아는 생성형 AI 모델의 학습과 추론에 필요한 고성능 그래픽처리장치(GPU)를 공급하는 핵심 기업이다. AI 모델 경쟁이 치열해지고 데이터센터 투자가 늘어날수록 반도체 수요도 확대되는 구조다.
황 CEO가 트럼프 대통령과 보조를 맞춘 데에는 AI 위험성에 대한 시각 차이뿐 아니라 미국의 기술패권 경쟁과 엔비디아의 사업 이해관계도 맞물려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편, 이날 황 CEO가 사용한 스마트폰도 눈길을 끌었다. 트럼프 대통령의 전화를 스피커폰으로 연결하는 과정에서 황 CEO가 삼성전자가 지난 7월 공개한 최신 폴더블폰 '갤럭시 Z 폴드8'을 사용하는 모습이 포착됐다.
황 CEO는 앞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에게 선물받은 갤럭시 Z 폴드7을 사용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폴드8의 입수 경로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지난 7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이 회장과 만난 지 약 두 달 만에 최신 제품을 사용하는 모습이 공개되면서 이 회장이 다시 선물한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